오〜호. 오〜하. 어이나 갈까 에〜호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박이 저승일세. 이렇게 시작되는 상여소리가 2000년대 중반까지 여주시 일원에서 종종 들렸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여소리가 사라져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진 느낌이다.고인의 마지막 길을 후손들이 호화롭게 보내주던 우리의 장례문화는 지난 삼국시대부터 물속에 안장하는 수장(水葬). 시신을 나무에 올려놓는 풍장(風葬). 화장(火葬). 매장(埋葬) 등 다양한 장례문화에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매장과 화장에서 화장문화로 바뀌는 현실이 됐다.상여는 시골 큰마을 위주로 보관해 오면서 윗마을, 아랫마을이 공동으로 이용해 왔다. 장례의식의 상여소리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전통문화의식은 거의 같아 그 소리가 구슬프고 애절해 우리에게 낯설지 않아누구에
채마포는 채소나 밭작물을 기르는 밭이란 뜻이겠다. 요즘 말하는 텃밭이다. 우리 중부지방은 채마포 일이 4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감자와 땅콩을 시작으로 5월 초부터는 고추, 참깨, 옥수수, 오이, 호박 등 각종 야채가 농촌의 일손을 몰아친다. 밭작물 심기가 마무리 되는 시점이면 또한 가래질이며 써레질로 논농사도 시작된다. 지금처럼 기계화가 되기 전 어릴 적 시골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런 암소를 몰고 가시는 선친의 지게에는 쟁기가 얹혀 있었다. 지게고리에는 조그만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즐거운 음악을 뿜어내며 농사일의 고단함을 희석시키는 장면도 일품이었다. 내도 그 당시에는 항상 그 라디오를 들어가며 일하던 기억이 난다. 음악을 들으면 훨씬 지루함을 덜고 힘도 덜 드는 느낌이었다. 그 때는 한창 팝송을 배
2013년 중순께, 당시 민주당 대변인이 귀태(鬼胎)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그는 ‘기시 노브스케와 박정희’라는 서적을 근거로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두 지도자를 귀신 ‘귀’자에 태아 ‘태’자를 써서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손인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양국 정상에 올라 구시대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말마따나 두 지도자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었더라면 두 나라가 쇠퇴의 나락으로 곤두박질하거나 파국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라. 이토록 두 나라의 역사가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그 두 지도자들의 덕택이 아니던가. 이렇듯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은 없다. 누구나 세상에
요즘 사회적으로 너무 혼란스럽다. 정치권의 갈등, 서민들의 경제적인 압박, 북한의 비핵화 문제 등 혼돈(渾沌)도 이런 혼돈이 없는 듯하다. 며칠전 새벽에 느닷없이 일필휘지하며 생각해 둔 ‘정신의 새벽’을 옮겨 본다.시골에서 어머니 옆에 자다가는 어머니 잠꼬대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녘 시계를 보니 네 시가 좀 안 됐다. 시원하게 물 한잔을 마시고는 화장실을 거쳐 밖에 나가본다. 새벽공기가 참으로 좋다. 도회지 아파트 속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기분들이 엄습한다. 엊저녁에 목청을 돋우던 개구리들은 곤하게 잠에 떨어진 시간, 대신에 이웃집 닭장에서 꼬끼오하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안개 속의 정적을 흔드느라 요란하다. 덩달아 인기척을 느낀 이웃집 황구도 컹컹댄다. 동녘은 여명(黎明)을 잉태하고 세상을 깨우려는,
가평군 북면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경계에 있는 경기도의 최고봉 화악산(華岳山1.468m)은 경기 5악산 중에서도 으뜸이다.정상 주변은 군사지역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정상 서남쪽 1km 거리에 있는 중봉이 화악산 정상을 대신하고 있고, 산세가 웅장하고 사방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서·남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물이 가평천의 상류를 이루어 북한강에 흘려든다최고봉 신선봉(1천468m)과 서쪽의 중봉(1천450m) 동쪽에 응봉(1처천436m)에 고만고만한 높의 산을 삼형제 봉이라 부른다사실상의 정상 역할을 하는 중봉에 서면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일품이며 북쪽에서 시계방항으로 촛대봉·수덕산·명지산·국망봉·석룡산·백운산 등이 바라보인다중봉 남서쪽 골짜기에는 태고의 큰골계곡이 있고 남동쪽
내는 내가 생각해도 요즘 참 바쁘게 산다. 혹자들은 직장 출근도 안 하면서 뭐가 그리 바쁘냐고 빈정대기도 하지만.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내 사는 용인으로 서울로 학교로 스터디그룹으로 정신없이 돌아친다. 그러다가 수요일 저녁이면 평생교육원 강의를 마치고, 시골고향 여주로 어머니를 뵈러 내려온다. 금요일까지 조용히 독서도 하고, 서예공부도 하다가 싫증나면 기타도 쳐본다. 시골에 요일을 정해 내려오는 것은 어머니의 밥상 때문이기도 하다. 평소 혼자 계시면 반찬을 거의 안 해 드시다가, 자식 놈이라도 오면 반찬의 가짓수가 틀려진다. 내도 엄마 손맛이 좋다지만, 당신에게도 넉넉한 밥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철에 맞는 텃밭 가꾸기도 중요일과다. 2주전에 뿌려 논 상추와 아욱이 서로 비집고 올라오는 모습들이 꼭
지난달 강원도 대형 산불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봐왔던 국가 재난 상황의 모습이었다. 지역 주민의 피해와 더불어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이 한꺼번에 훼손되는 현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재난 상황에 맞서는 소방관들의 모습은 그 곳에서도 빛났다. 위험한 재난이나 위기 상황에 119 그분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받고 안심하고 있는지 모른다.오늘 점심에 칼국수를 먹었다. 칼국수 식당 근처에 소방서가 있는 것 같다. 내 옆에 오렌지색 근무복을 입은 30대 소방관 세 분이 점심으로 칼국수를 시키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칼국수가 나오고 반 쯤 먹었을 때, 식당 아주머니가 소방관들에게 다가와 말했다.“칼국수 값을 누가 내고 가셨어. 고생한다고...”아마 내
여주 남한강을 활보하는 황포돛배! 보기도 아름답고 승선하면 부러움을 모르는 행복감에 도취 된다, 철썩철썩 푸른 물결을 헤치고 물위를 활보하는 여강의 제왕 황포돛대는 여주의 전설을 전해주고 문화를 발전시켜온 여주인이 부르는 여강의 자랑스런 황포 돛대다.여주중심 백리(38,9km)를 흐르는 남한강은 곳곳에 보기 좋은 절경과 둔치로 여주를 더욱 아름답게 보여 지게하고 관광지로서의 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천년고찰 신륵사는 유일하게 강변에 세워진 사찰로 전 국민에게 알려진 남한강변의 아름다운 사찰로 여주를 돋보여준다.거기다 여주 남강에 여주보, 강천보, 이포보가 설치되면서 여름철 장마만지면 농작물을 망치고 가축까지 쓸어가던 슬픈 강이었지만 이제는 여주를 강바닥을 2m이상 파내고 만든 보를 조절하면서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 홍천강 삼면에 둘러싸인 팔봉산(八峰山 328m)의 자연환경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한장의 수채화라고 할만하다.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세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절벽을 오르는 이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맛이 있다.봉우리마다 바위로 되어있어 밧줄에 의지하여 오르거나 수직에 가까운 철재 사다리를 통해 오르내리는 코스로 이어진다. 산을 오르는데도 난이도가 있다면 팔봉산은 어려운 쪽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산을 자주 오르지 않는 이들보다는 이런 저런 산을 많이 다닌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산이다.이런 팔봉산을 처음 산행하게 되면 세 번 놀라게 된다. 산세가 너무 아름다워 놀라고, 명성보다 해발고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암벽과 능선이 험하여 바윗길이 만만하지 않아 다시
며칠 전 시골에서 새벽에 부역을 했다. 마을회관의 화단에 영산홍을 심고 꽃 양귀비 씨를 뿌렸다. 20대에서 80대 노인까지 가정마다 한사람씩 나와서는 삽, 괭이, 뇌기와 호미를 가지고 열심히 파종하고 심고 가꾸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내 기억으로는 이전에 마지막으로 동네 부역에 참여한 것이 고등학교 때로 생각되니 40여 년 전은 되는 것 같다.원래 부역이란 사전적의미로 보면 ‘국가나 공공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지우는 노역’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는 좀 거창한 의미인 듯 하고, 내가 참여하는 부역은 그냥 주민자치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지방자치시대에 맞는 말일게다.어릴 적 고향에서 부역에 참여하여 땀 흘리던 모습이 새삼 파노라마로 이어 나온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
2019년 3월 26일 열린 국무회의는 '특례시'라는 행정적 명칭을 받을 수 있는 대도시의 기준을 '인구 100만명'으로 정했다.수많은 전문가, 학자, 인구 100만명에 못 미치는 지역 구심 도시들은 물론 시민들까지 나선 반발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행안부의 ‘인구수 기준’이 그대로 반영됐다.마치 덩치 큰 형 하나 대학 보내려고 똑똑한 동생들은 공장에서 쪽잠을 자야 했던 ‘과거 개발 시대 정부로 회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전문가들 “지방분권 이해 못한 시대착오적인 정책” 비판지자체들 “기계적인 행정 행위, 행정편의주의” 반발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방분권의 원래 취지를 잘못 파악한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단순 인구수가 아닌 행정수요, 생활인구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내가 사는 용인에도 한택식물원이나 에버랜드에는 각종 꽃이 지천이지만, 올해는 외지에 나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얼마 전 모임에서 창녕 남지 유채꽃축제장을 다녀왔다. 70여 만평에 흐드러진 유채꽃의 황색 물결과 인파의 출렁임 속의 웃음꽃이 너무 잘 어울렸다. 그 지역 주민들이 그들만의 관광 상품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그 곳을 오가는 고속도로 주변 산하에는 벚꽃이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너무나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사회정세는 어수선하고 경제는 어렵다고해도 숭고한 자연의 섭리에는 그저 숙연할 뿐이다. 사시사철 때를 어기지 않고 보여주는 저 자연의 질서가 있기에 그나마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나의 올바른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꽃은 사전적 의미로는 그저
사람의 마음은 덕을 좋아하고 형을 싫어하니, 이것은 인간 생존의 본능이다. 통치자는 대신들의 이런 심리에 일부러 영합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든 이것을 이용해야만 한다.통치자가 덕을 활용하지 않으면 대신들의 마음을 굴복시킬 수 없다. 통치자와 신하의 관계에서 융통성 없는 권력의 사용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다. 통치자가 덕을 활용하는 것은 바로 대신들의 감정을 구슬리는 방책이며 그들로 하여금 은혜에 감사하여 기꺼이 불속에라도 뛰어들게 만든다. 하지만 통치자가 형벌을 활용하지 않으면 대신들을 통제할 수 없다. 대신들은 법규를 준수하고 직무에 힘써야 하지만, 항상 법규를 어기고 직무를 소홀히 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통치자가 이런 자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으면 대신들은 경계심을
올 초에 그간 열심히 근무했던 공직에서 명퇴하고, 그 간 갈구(渴求)했던 동양학 공부를 제대로 하고자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스승님들을 찾아 수강하고 있다. 장자, 논어, 훈민정음, 주역 등, 내가 강의전선에 나가고자 했던 부문을, 아직까지는 독학으로는 일천하다 생각되는 부분의 경험과 기술을 충전하기 위하여, 스승을 모시고 수강하니 이해가 열배는 아니더라도 두 배는 빠르게 되는 듯하다. 옛말에, 학문에는 좋은 스승과 좋은 책이 있어야 한다는 평범한 논리를 실전적으로 체득하고 있다.논어 공야장(公冶長)에 ‘공자께서 가장 아꼈다는 제자 안회(顔回)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데, 자공(子貢)은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안다.’라는 구절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나는 72명이라는 공자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뒤쳐진 제자들
지난 4월11일은 의미가 남다른 날 이었다. 우리나라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 100주년이 되는 날이고 평택시는 인구가 50만명 진입하는 날이었다. 그 어느때보다 의미가 깊은 날 이었다. 이날 만나는 지인들과 이야기 화두는 100년전 우리 지역은 어떠한 상황이었을까 이었다?평택시는 고려시대 이래로 오랫동안 여러 개 군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진위현(振威縣)·평택현(平澤縣)·수원부·양성현(陽城縣)·직산현(稷山縣)·영신현(永新縣)·광덕현(廣德縣)·용성현(龍城縣)·경양현(慶陽縣) 등 9개 군현과 송장부곡(松庄部曲)·백랑부곡(白浪部曲)·포내 미부곡(浦內彌部谷)·종덕장(宗德莊)·오타장(吾朶莊)·청호역(菁湖驛) 등 7~9개 특수행정구역이 현재의 평택시에 산재해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일부 현이
강원도 철원군 갈마읍과 경기도 포천시 경계에 있는 명성산은 가을철이면 억새꽃 축제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명성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산정호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름다운 산정호수를 끼고 있어 호수의 운치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그러나 922m라는 높이만큼이나 산을 오르는 맛도 각별한 곳으로 산세가 전체적으로 바위와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동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남쪽에 있는 삼각봉 동편 분지에는 억세가 무성하다. 덕분에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억세꽃 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산이기도 하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의 애환이 호수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진 명성산에 숨겨져 있다. 궁예의 부하 왕건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 후 전의을 상실한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는
우리 어머님은 올해 81세이시다. 강원도 산골의 횡성에서 4남매의 둘째로 태어나시었고, 6.25전쟁 때에 정(鄭)씨 집성촌인 평창의 ‘골미’라는 동네로 이주하셨다. 그 산골의 뒷산 등성에는, 나도 어릴 적에 외가댁에 갔을 때 올라가봤던, 큰 바위 굴이 우거진 숲속에 지금도 있는데, 아직도 그 굴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시곤 한다. 전쟁이 한창이던 때 손위 외삼촌이 북한군의 잡역꾼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그 굴에 숨어 지내셨다 한다. 외할머니랑 어머니가 매일 끼니 배달의 중책을 수행하여 북한군이 물러갈 때까지 용케 끌려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또 한 이야기는, 지금은 황당하게 들리는 호랑이에게 혼쭐나셨다는 것이다. 동네 언니들이랑 몇 명이 봄나물을 뜯으러 뒷산으로 가셨단다. 나물이 있는 곳을 뒤지며 계속 산을 오르
“외교 활동은 자기 국가의 정치를 위해 봉사하는 것. ‘자강(自强)’하여 자신의 힘으로 외교상의 주도권을 쟁취해야”중국 역사에서 당나라는 역대 왕조들과 국위를 비교해볼 때 단연 최강이었다. 위징(魏徵)은 당 태종을 위해 ‘중국이 안정되어 있어야 사이(四夷)가 복종한다.’는 외교 전략을 입안했다. 정관(貞觀) 연간(627~649년), 문무는 조화를 이루어 전에 없던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내는 안정되었고 국력이 부강해졌다. 당 태종이 내세운 외교 전략의 근본은 ‘나를 믿어야지 남을 믿지 않는다’는 ‘시기이불시인(恃己而不恃人)’에 있었으며, 외교를 국내의 안정과 강성이라는 기초 위에서 성공적으로 구축했다.그는 정치적으로 내정을 개선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등 자신의 힘을 키우는 데 있는 힘을 다 했다
이제는 봄이 완연하다. 산은 이제 초록을 되찾았고, 동이 트는 시간이 더욱 일러졌다. 산행을 하는 것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이렇게 색색이 변하는 모습에 있다. 봄에 보는 산과 가을에 보는 산이 다르고 새벽에 보는 산과 아침에 보는 산이 또 다르다.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도 다르고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는 바람의 냄새도 다르다. 이제 봄이다. 봄에는 또 산을 올라가야 한다.이번에 올라가야 하는 산은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에 자리한 오봉산(五峯山 779m)이다. 소양강댐 건너 청평사 뒤쪽에 우뚝 솟아있는 오봉산은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 등 연이은 다섯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산세는 크지 않으나 바위와 수목이 어우러져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산이다.예로부터 경운산,
올해 우연히 제주도 모슬포를 다녀오면서 그간 잠자던 중년의 감성을 강하게 일깨워 내는 일이 있었다.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하굣길에 고향 이웃마을의 셋째 큰댁을 자주 들르곤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읽을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나보다 7~8년 위인 4촌 형들이 가끔 사다 보는 주간 잡지를 보는 재미로 들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 선친은 백중숙계(伯仲叔季) 4형제 중 막내(季)이셨고, 그 당시 백부(伯父)께서는 평창에 사셨고, 중부(仲父)께서는 제주도 모슬포 제1훈련소에서 돌아가셨으며, 숙부(叔父)께서는 여주 우리 이웃마을에 사셨기에 가장 친한 친척집이라고 자주 숙부 댁을 찾곤 하였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무심코 숙부 댁에 들러 깊숙한 부엌에서 자욱한 연기 속에 식사를 준비하시는 숙모님께 꾸벅 인사를 하